18시의 유령 — 아무 흔적도 안 남기고 사라진 자동화를 21시의 우리가 이어받은 이야기
우리 갤러리 보도자료 봇, EpoqueGalleryCheck는 하루에 다섯 번(9/12/15/18/21시) 조용히 깨어난다. 새 보도자료가 있으면 읽고, 이미지를 고르고, 캡션을 쓰고, 인스타그램에 올린다. 없으면 그냥 다시 잠든다. 8월 24일, 21시 실행이 깨어나서 평소처럼 메일함부터 확인하려던 참이었다. 그런데 작업 폴더 안에 낯선 게 하나 있었다.
candidate_oaoa_borrowedfaith라는 폴더였다. 배준현·황예랑 2인전 보도자료용
후보 폴더. 열어보니 이미지는 이미 다운로드돼 있었고, 리사이즈도 끝나 있었고, 캡션
파일에는 완성된 문장이 들어 있었고, 게시용 스크립트까지 준비돼 있었다. 사람으로 치면
현관문 앞에 택배를 다 쌓아놓고 벨만 안 누른 상태. 파일 타임스탬프를 보니 18시 01분부터
18시 06분 사이였다. 세 시간 전 실행이 여기까지 해놓고 사라졌다는 뜻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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범인을 찾으려는데, 현장에 아무것도 없었다
자동화가 실패하면 보통 단서가 남는다. 에러 메시지, 중간에 끊긴 로그, 최소한 "여기서
멈췄다"는 흔적. 그런데 이번엔 아무것도 없었다. Gmail에는 이 보도자료 메일에
Epoque_Posted 라벨이 안 붙어 있었다 — 아직 게시 안 했다는 뜻은 맞다. 그런데
그날의 작업 일지(EP 로그)에도 18시 실행 관련 기록이 통째로 없었다. 텔레그램 알림도
없었다. 마치 18시의 실행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, 딱 하나 — 다 준비된 채
남겨진 파일들만 빼고 — 아무 흔적이 없었다.
원인을 캐보려 해도 캘 수가 없었다. 주간 사용 한도에 걸렸을 수도 있고, 세션이 예상보다 일찍 끊겼을 수도 있고, 예산 상한을 넘었을 수도 있다. 로그가 없으니 어느 것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. 이번 자동화 인프라를 통틀어 이런 패턴 — 헤드리스 세션이 아무 신호 없이 조용히 죽는 것 — 이 발견된 건 처음이 아니다. 카드뉴스·릴스 파이프라인에서도 8월 초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이틀 연속 있었다. 이번엔 다른 자동화(에포크아트)에서, 심지어 게시 직전 단계에서 똑같은 유령이 다시 나타난 거였다.
범인은 못 잡았지만, 다행히 사건 현장은 깨끗했다
여기서 반전은, 이 실패가 오히려 제일 덜 나쁜 방식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. 18시 실행이 만약 "게시" 버튼을 누르다가 죽었다면 중복 게시나 절반만 올라간 이미지 같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. 하지만 멈춘 지점이 딱 게시 직전이었다. 그래서 21시 실행이 폴더를 열어봤을 때, 반쯤 끝난 범죄 현장이 아니라 깔끔하게 포장까지 끝난 상자를 발견한 셈이 됐다. 21시 실행은 처음부터 다시 이미지를 고르고 캡션을 쓰는 대신, 그 상자를 그대로 집어 확인만 한 번 더 하고 게시했다. 세 시간 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반쯤 끝낸 숙제를 몰래 넘겨준 셈이었다.
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, 이걸 운으로만 남겨두진 않기로 했다. 이제 매
실행은 시작할 때 메일함만 보는 게 아니라, 최근 타임스탬프를 가진 candidate_*
폴더 중에 대응하는 완료 라벨이나 로그가 없는 게 있는지부터 한 번 훑어본다. 유령이 다시
나타나도, 이번엔 그 유령이 남기고 간 짐을 알아보고 이어받을 수 있게.
사람 없이 돌아가는 자동화가 진짜로 배워야 하는 것
이 사건이 재밌는 이유는, 우리가 처음에 자동화에 원했던 건 "실수하지 않는 것"이었는데 정작 지금 자동화가 실제로 잘하게 된 건 "실수한 흔적을 알아보고 이어받는 것"이기 때문이다. 완벽하게 안 멈추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 못 했다. 대신 멈췄을 때 그 자리에서 다음 차례가 알아서 집어 드는 시스템은 만들었다. 1인 기업에서 자동화를 돌린다는 건 결국 이런 것 같다. 사고가 아예 안 나게 막는 게 아니라, 사고가 나도 다음 사람(또는 다음 실행)이 그 자리에서 이어받을 수 있게 흔적을 남기고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.
이런 자동화 삽질과 복구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아둔 기록이 「AI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-실전편-」에 있다. 코딩 몰라도 자동화를 굴리다 보면 이런 유령을 계속 만나게 된다는 얘기도 함께 담겨 있다.
작성: Art Gourmet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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